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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id="content">
<h1>4장. 언어의 역사와 작동원리</h1>
<p>당연히, 어떤 의사소통(communication) 이론도 언어에 관한 논의를 피할 수 없다. 사실상 언어는 어떤 측면에서는 의사소통 그 자체의 또 다른 이름이며, 의사소통이 이루어 질때 이를 구성하는 코드들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장의 후반부에서 암호화되고 복호화된 메시지들을 사용하는 것이 인간 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체와 인간이 사용하는 기계에게도 중요하다는 것을 볼 것이다. 새들은 서로 의사소통을 하며, 원숭이도 서로 의사소통을 하고, 곤충들도 의사소통을 하고, 이 모든 의사소통에서 어떤 것들은 여기에 사용된 코드 시스템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신호나 기호로 이루어진다.</p>
<p>인간의 의사소통을 다른 동물들의 것과 차별화 하는 점은 (a) 사용되는 코드의 섬세함과 복잡함, 그리고 (b) 이 코드가 가지는 높은 수준의 무작위성이다. 많은 동물들이 그들의 감정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으며, 감정을 전달함으로써 적의 존재를 알리거나 다른 성별을 가진 같은 종의 존재를 알리거나, 이와 같은 종류의 매우 다양한 상세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이들 메시지의 대부분은 일시적이며 저장되지 않는다. 인간의 언어로 번역한다면 대부분 욕설이나 감탄사로 번역될 것이고, 일부는 우리가 명사나 형용사로 서툴게 표현할 만한 단어가 될 것이나, 동물들은 아무런 문법적 구분 없이 사용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동물의 언어는 감정을 먼저 전달하고, 사실들을 그 다음 전달하며, 사실들 간의 좀더 복잡한 관계는 전혀 전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p>
<p>동물들의 언어의 이와 같은 한계 외에도 의사소통에 사용되는 글자에 관한한, 그들의 언어는 종에 따라 매우 일반적으로 고정이 되어 있으며 변화되지 않는다. 한 마리 사자의 울음소리는 다른 사자의 울음소리와 거의 동일하다. 하지만 앵무새나 구관조, 까마귀처럼 주변 환경으로부터, 특히 다른 동물이나 사람의 소리로부터 소리를 획득할 수 있거나, 비록 매우 제한적으로 나마 자신의 어휘를 수정하거나 확장할 수 있는 동물도 있다. 물론 이런 동물들조차도 인간에 비교되긴 어려워 보인다. 인간은 어떤 발음 가능한 소리도 특정한 의미를 가지는 코드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며, 이 코드를 주변의 그룹에 전달해서 그룹 내에서 이해될 수 있는 언어로 사용할 수 있고, 그룹 외부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코드로 간주된다.</p>
<p>매우 큰 한계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인간의 말을 흉내 낼 수 있는 새들은 공통적으로 몇 가지 특징을 가진다: 그들은 사회적이며, 상대적으로 오래 살고, 인간의 기준으로 볼때도 손색이 없는 뛰어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의심의 여지 없이, 말하는 새는 인간이나 동물의 소리를 적절한 신호로 사용하도록 배울 수 있으며, 적어도 보통사람이 듣기에 새가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간을 제외하고 가장 언어 능력이 뛰어난 개체도 새로운 소리에 손쉽게 중요성을 부여하는 능력에 있어서나, 의미를 가지는 소리들의 레퍼토리에 있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관계나 계층, 혹은 러셀의 “더 높은 논리적 타입"에 해당하는 것들을 표현하는 기호를 만들어내는 능력에 있어서 인간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p>
<p>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어가 살아있는 생명체만의 속성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인간이 만든 기계도 가질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나는 더 나아가 인간의 언어에 대한 집착이 분명히 인간에게는 내재되어 있지만 인간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유인원에게는 내재되어 있지 않은 어떤 가능성을 나타낸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학습에 의해 숙달되어야 하는 가능성으로서만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p>
<p>우리는 일반적으로 의사소통과 언어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이 기계와 이야기하고, 기계가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기계와 기계가 이야기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예를 들어, 미국 서부의 황량한 서쪽 끝자락이나 북부 캐나다 같은 곳엔 발전소를 세울 만한 곳들이 많이 있는데, 이들 장소는 일할 사람들이 거주할 만한 정착지에서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고, 새로운 정착지를 세우기에는 너무 작고, 그렇다고 무시해버릴 만큼 작지는 않은 곳들이다. 따라서 이들 발전소는 상주 인력 없이 운영되고, 관리하는 엔지니어가 점검하러 돌아볼 몇 개월간 사실상 사람없이 작동될 수 있어야 한다.</p>
<p>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수적이다. 하나는 자동화 기계의 도입이다. 버스바(busbar. 역자주: 전자회로에서 여러 개 회로 사이를 연결하는 전도체)가 제대로 된 주파수, 전압, 위상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발전기를 버스바나 다른 접속부에 연결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하고, 비슷한 방식으로 전기적, 기계적, 혹은 수압에 의한 우발적인 사고와 같은 재앙을 막을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발전소의 매일매일의 사이클이 중단되거나 변경되는 일이 없다면 이와같은 종류의 동작으로 충분할 것이다.</p>
<p>그러나 이게 그렇지가 않다. 발전 시스템의 부하는 다양한 요소에 종속적이다. 변동이 심한 산업계의 요구, 시스템의 일부 요소의 동작을 중지 시킬 수 있는 응급사태, 그리고 심지어 지나가는 구름도 변수가 될 수 있는데, 이 구름이 한낮에 수만 가구의 사무실과 가정집에서 전등을 켜게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작업자에 의해 운영되는 발전소 뿐만 아니라 자동화된 발전소는 항상 부하 관리자(load dispatcher. 역자주: 발전소에서 일하는 사람중 한명으로, 현재의 전력 상황을 모니터하고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이 고객들에게 적절히 전달될 수 있도록 발전소 내외의 다양한 관계자들과 긴밀히 연락하는 역할을 담당함.) 와 연락할 수 있어야 하며, 부하 관리자는 자신의 기계들에 명령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작업은 적절하게 코드화된 신호를 발전소로 전달함으로써 이루어지는데, 이 목적을 위해 따로 만들어진 특별한 회선이 이용되기도 하고, 기존에 사용되던 전신/전화 회선이 이용되기도 하고, 혹은 전력선 자체를 이용해서 만들어진 통신회선이 이용되기도 한다. 한편, 부하 관리자가 현명하게 명령을 내릴 수 있기 전에 그는 발전소 내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특히, 그는 그가 내린 명령이 제대로 수행되었는지 아니면 장비의 고장 등으로 지연되고 있는지 알아야만 한다. 그러므로 발전소의 기계들은 부하 관리자에게 응답 메시지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사람이 말하고 기계로 전달되는, 그리고 반대방향으로도 이루어지는 언어의 한가지 예다.</p>
<p>우리가 언어의 영역에서 기계는 허용하면서 거의 철저하게 개미는 배제하는 것이 독자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를 만드는데 있어서 하등 동물들에게는 발견되지 않는, 인간의 속성들을 포함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할 때가 자주 있다. 만약 이것을 우리 인간의 성격(personality)에 대한 은유적인 확장으로 보고자 하는 독자가 있다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하지만 그는 다음 사실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즉, 우리가 기계에 인간의 도움을 중단한다고 해서 기계가 바로 작동을 중단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p>
<p>기계에게 전달되는 언어는 실제로 한가지 단계로만 구성되는 건 아니다. 배선 엔지니어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배선을 타고 전달되는 코드가 그 자체로 전부이긴 하다. 이 메시지 안에 사이버네틱스의 개념 전부를 실어 보낼 수도 있고, 메시지 이론을 전부 보낼 수도 있다. 우리는 메시지가 담고 있는 정보의 양도 측정할 수 있는데, 1장에서 설명했던 이론에 의하면 모든 가능한 메시지들 사이에서 이 메시지의 확률을 구하고, 이 확률의 로그의 음수값을 취하면 된다. (역자주: 엔트로피 값을 의미함. 엔트로피가 정보의 양 혹은 압축가능한 size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연구들이 있음) 그러나, 이 값은 배선을 타고 전송되는 실제 정보의 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단말 장치를 이용했을때 전송 가능한 최대치를 나타내는 것이다. 실질적인 단말 장치를 이용해서 전송되는 정보의 양은 정보를 보내거나 받아서 처리하는 단말 장치의 능력에 좌우된다.</p>
<p>이제 우리는 발전소가 명령을 수신하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구상할 수 있다. 스위치를 켜고 끄는 작업, 발전기를 특정한 위상으로 조정하는 작업, 수문에서 물의 흐름을 조절하는 작업, 터빈을 켜고 끄는 작업 등이 그 자체로 하나의 언어로 간주될 수 있으며, 그 자체의 과거 이력에 기반한 행동들의 확률로 구성된 시스템이다. 이 틀 안에서 모든 가능한 일련의 명령들은 고유한 확률을 가지며, 따라서 고유한 양의 정보를 운반한다.</p>
<p>라인과 단말 기기의 관계가 완벽하다면, 라인의 전송용량의 관점에서 메시지에 포함된 정보의 양과 기계의 동작의 관점에서 수행된 명령들의 정보의 양은 라인과 그 끝에 이어진 기계로 구성된 시스템을 통해 전송된 정보의 양과 동일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라인과 기계 사이에는 번역의 단계가 있을 것이고, 이 단계에서 회복할 수 없는 정보의 손실이 생길 수 있다. 실제로, 정보를 전송하는 과정은 최종적인 혹은 실질적인 단계 외에도 몇 개의 연이은 전송 단계를 포함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단계들 사이에선 정보를 손실시킬 수 있는 번역 작업이 일어날 것이다. 정보는 사라질 수 있지만 복구될 수 없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것이 사이버네틱스 방식의 열역학 제2법칙이다.</p>
<p>이 장에 들어와서 이 시점까지 우리는 기계가 종착점인 통신 시스템에 대해서 논의해왔다.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통신 시스템은 기계에서 종료되지만 유일하게 일상적인 언어 시스템만은 인간이라 불리는 특별한 종류의 기계에서 종료된다. 단말 기기로서의 인간은 3가지 레벨로 구분되는 통신망을 가지고 있다. 일상적인 음성 언어의 경우에, 인간의 첫번째 레벨은 귀, 그리고 내이(inner ear)와 영구적이고 확고하게 연결된 두뇌의 특정한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이 기관은 공기중의 음파를 전달하는 기관(역자주: 고막의 진동을 내이로 전달하는 중이는 세 개의 작은 뼈로 이루어져 있음)과 연결되어 언어의 음성적(phonetic) 측면을 대표한다.</p>
<p>언어의 의미론적(semantic) 측면 즉 두번째 측면은 의미(meaning)와 관련이 있다. 서로 다른 언어들 간에 단어들의 의미가 불완전하게만 일치하기 때문에 하나의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것이 제한되고, 따라서 서로 다른 언어간의 번역이 어렵게 된다. 영어에서 단어들이 사용되는 통계적인 빈도에 따라 한두 단어, 혹은 세 개 단어를 뽑아본다면 상당히 그럴듯한 모양새의 말이 구성될 것이고, 이렇게 만들어진 횡설수설한 문장은 잘 씌여진 영어 문장과 꽤 설득력있는 유사성을 가질 것이다. 이 지적인 대화를 모방한 무의미한 복제품은 실제 대화와 음성적 관점에서는 실질적으로 동일하지만, 의미론적으론 허튼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에 태어난 국가의 억양을 그대로 가진 외국인의 영어나 문어체의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의미론적으론 훌륭하지만 음성적으론 형편없다. 또한, 대부분의 인위적인 식후연설(after-dinner speech)은 음성적으론 훌륭하지만 의미론적으론 형편없다.</p>
<p>인간의 의사소통 기관에서 음성적 매커니즘의 특징을 알아내기는 매우 어려운데, 어떤 것이 음성적으로 의미있는 정보인지를 알아내거나 그 정도를 측정하기는 쉽지 않다. 예를들어, 귀와 두뇌는 상당히 높은 주파수의 소리를, 그것이 비록 귀에 전달되거나 전화를 통해 전송될 수 있더라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다르게 말하면, 이 고주파가 적절한 수신기에게 얼만큼의 정보를 전달할 수 있던 간에 귀로는 아무런 의미있는 양의 정보를 전달하지 못한다. 한편, 의미론적으로 중요한 정보를 알아내거나 측정하는 일은 이 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p>
<p>의미론적 인식은 기억력과 그에 따른 긴 지연(delay)을 요구한다. 중요한 의미론적 단계에 속하는 추상화는 단순히 항구적으로 고정된, 두뇌의 뉴런들의 하위부품들에 의한 것-예를들어, 기하학적 형태를 인식하는 데에는 이들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지만-이 아니라, 특정한 목적을 위해 임시로 구성된 인터넌셜 풀(internuncial pool)-즉, 보다 큰 조립에 사용될 수있지만 그 용도로 고정되어 있지는 않은 뉴런들의 집합 - 로 이루어진 추상화 탐지 도구를 이용한다.</p>
<p>두뇌에 존재하는 고도로 조직화되고 항구적인 조립품(assembly) - 이들은 주로 특별한 감각기관과 연관된 두뇌에 존재하는데- 과는 달리 학습된 반사작용과 같이 임시로 형성되는 특별한 스위치나 연결들이 존재한다. 이와같은 특별한 스위치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사용되고 있지 않은 일련의 뉴런들을 조립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조립의 문제는 당연히 조립된 뉴런들의 시넵스간 임계치와 관련이 있다. 뉴런들은 이러한 임시의 조립품 안에 존재할 수도 있고 밖에 존재할 수도 있으므로 이들에게 특별한 이름을 부여하는게 좋을 것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이들은 신경생리학자들이 인터넌셜 풀이라고 부르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p>
<p>이것은 적어도 그들의 행동에 관한 합리적인 이론이다. 의미론적 수용기관은 언어를 전달받거나 번역할때 단어 단위가 아니라 개념 단위 혹은 훨씬 더 일반적 단위로 처리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러한 처리는 변환과정에 있어서 과거의 경험 전부를 요구하기도 하며, 이 오랜 기간 이어져온 결과들(long-time carry-overs)은 작업에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p>
<p>통신의 3번째 레벨은 부분적으로는 의미론적 레벨과 부분적으로는 음성적 레벨에 의한 번역을 나타낸다. 이것은 개인의 경험을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간에 관찰 가능한 행동으로 번역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언어의 행동적 레벨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하등동물에서는 이것이 음향적인 요소를 제외하고는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레벨의 언어다. 실제론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는데, 특정 사람에게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특별한 경우에 대해 한구절의 문장을 제시한 경우를 생각해 보자.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의 행동을 보는 방법 밖에 없다. 이 행동은 두 가지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하등동물에서도 볼 수 있는 직접적인 행동이고, 다른 하나는 말이나 글과 같은 코드화되고 심볼화된 행동이다.</p>
<p>이론적으로 보자면 의미론적 언어 혹은 행동 언어에 대한 통계학을 통해 이들이 포함하고 있는 정보의 양을 측정하는 적절한 척도를 얻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실제로, 음성 언어가 수신 기관에 도착할때 포함하고 있는 정보는 그것이 초기에 발신된 것 보다는 적은게 사실이고, 적어도 귀에 도착할때까지 연결시켜주는 전송시스템이 운반할 수 있는 양보다는 적다. 그리고, 의미론적 언어나 행동 언어가 포함하는 정보는 한층 더 적다. 이 사실은 다시 한번 열역학 제 2법칙의 당연한 결과이고, 각 단계에서 전송되는 정보를 적절히 코드화된 수신 시스템으로 전송 가능한 최대 정보량으로 본다면 반드시 참이 될 수 밖에 없다.</p>
<p>이 시점에서 나는 독자들이 문제로 생각하고 있지 않을 이것에 주목했으면 하는데, 바로 왜 침팬지는 말을 하지 못하는가 하는 것이다. 침팬지의 행동은 이 동물에 관심을 가져온 심리학자들에게 오랫동안 수수께끼와 같았다. 어린 침팬지는 기이하리만큼 어린아이와 비슷하고 지능에 있어서는 거의 동등하거나 심지어 앞서기도 한다. 동물 심리학자들은 침팬지를 인간 가족이 키우게 하고 한두살까지 인간의 언어에 노출시키더라도 침팬지가 언 어를 표현의 수단으로 삼지 못하고 아기와 같은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을수 없었다.</p>
<p>불행인지 다행인지는 알수 없으나, 대부분의 침팬지는, 사실상 관찰했던 모든 침팬지는, 좋은 침팬지로 남았고, 인간을 닮은 백치가 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반적인 동물 심리학자들은 원숭이 조상을 배신하고 인간의 행동을 더 따르는 침팬지가 나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생각한다. 두뇌에 결함이 있어서 침팬지 수준에도 못미치는 사람이 존재하는걸 봐서는, 지금까지의 실패가 순전히 지능의 양적인 문제인 것은 아니다. 말을 하거나 혹은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 단순히 이 동물의 본성이 아닐 뿐이다.</p>
<p>말하기(speech)는 이처럼 사람과 가장 가까운 친척이면서 가장 흉내를 잘 내는 동물도 전혀 따라오지 못할 만큼 인간의 고유한 활동이다. 침팬지가 내는 몇 안되는 소리는 대부분 감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신체기관은 소리를 만드는데 있어서 명확하고 반복가능한 정확도를 가지지 못하므로, 자신들의 소리로 고양이 울음소리 이상의 신호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게다가 (이것이 그들의 소리를 인간의 소리와 한층 더 차별화시키는 점인데) 종종 이런 소리는 침팬지에게 있어서 사회집단의 구성원으로써 학습된 행동이 아니라 교육받지 않은 선천적인 행동이다.</p>
<p>말하기는 일반적으로 사람에게 속하는 기본 속성이지만, 특정한 형태의 말하기는 특정한 사회 집단의 구성원에게 속한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점이다. 우선, 사람들의 공동체 중에 청각장애나 정신지체자들을 제외한다면 고유한 화법(mode of speech)을 가지지 않은 공통체는 없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 모든 화법은 학습에 의한 것이며, 19세기에 언어에 대한 유전적 진화 이론을 만들고자하는 여러가지 시도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모든 형태의 언어가 유래하게된 하나의 토종 언어가 있을거라는 아무런 근거도 찾지 못했다. 아기들을 혼자 방치할 경우, 아기들이 말하고자 시도할 거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그들이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성향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지, 고정된 언어의 형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한 집단의 아이들을 그들의 언어형성 시기동안 어른들의 언어와 격리시켜둔다면 비록 투박한 형태일 순 있더라도 분명한 하나의 언어를 가지게 될 것이다.</p>
<p>그렇다면 어째서 침팬지는 말하도록 만들 수 없고, 사람의 아이들은 말하지 않도록 만들 수 없는 것일까? 어째서 말하고자 하는 일반적인 성향이나 언어의 일반적인 형태적, 정신적 측면은 많은 집단에서 매우 동일하게 나타나지만, 구체적인 언어학적 발현은 각각 다르게 나타나는 것일까? 적어도 이 사실들의 일부를 이해하는 것은 언어기반의 공동체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우리는 근본적인 사실을 단순히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즉, 유인원과는 달리 사람에게는 언어를 사용하고자 하는 충동이 넘친다고. 그러나 이때 사용되는 구체적인 언어는 각자의 특별한 경우에 따라 학습된 것이라고. 우리가 언어의 코드와 소리에 집착하는 것, 그리고 코드에 대한 집착이 언어에서 시작해서 시각적인 자극에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것 모두는 두뇌 자체에 박혀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많은 새들의 구혼을 위한 춤이나 개미가 집에 들어온 침입자를 인식하고 물리치게 하는 시스템과는 달리, 이러한 코드의 한조각도 우리가 태어날때 미리 정해져 있지는 않다. 언어라는 선물은 바벨탑에서 교란된 하나의 통일된 아담의 언어로 거슬러올라가지 않는다. 이것은 정확하게는 심리학적 충동이며, 언어가 선물이 아니라 언어가 가지는 힘이 선물인 것이다.</p>
<p>다르게 말하자면, 어린 침팬지가 말하는 것을 배우는데 있어서의 장벽은 언어의 음향적 단계가 아니라 의미론적 단계에 관련된 장벽인 것이다. <strong>침팬지는 단지 자신이 들은 소리를 자신의 생각과 연결시킬 무언가로 번역하거나 복잡한 행동으로 번역할 매커니즘이 내장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strong> 이 문장에서 첫번째 문장은 우리가 직접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므로 확신할 수는 없다. 두번째는 분명한 실험적 사실이다. 매커니즘 자체는 어느 정도 한계를 가지고 있을 수 있으나, 인간에게 이와 같은 매커니즘이 내장되어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p>
<p>이 책에서 우리는 이미 인간의 특별한 학습능력을 이 종을 다른 종과 구별하는 특징으로 강조한 바 있다. 그리고 이 능력은 인간의 사회생활을 벌이나 개미, 그밖의 다른 사회적 곤충들과 같이 얼핏봐서는 유사한 사회생활과 완전히 다른 성질의 것으로 만든다. 언어습득에 중요한 몇년간을 같은 종족과 접촉하지 못하게 한 아이들에 관한 증거들은 어쩌면 완전히 확실하지는 않을 수 있다. 사립학교의 곰들과 육군사관학교 늑대가 등장하는 키플링의 “정글북"의 소재가 됐던 “늑대 어린이" 이야기는 정글북의 이상적인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믿을 만한게 못된다. 하지만, 그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증거 중 하나는 언어를 가장 빨리 습득할 수 있는 특정한 시기가 존재한다는 것과 이 시기에 다른 사람과 접촉을 못하게 되면 언어의 학습은 제한적이고, 느려지며, 매우 불완전해진다는 것이다.</p>
<p>이것은 아마도 우리가 태생적인 기술이라고 보는 다른 능력들에서도 마찬가지인것 같다. 아이가 서너살까지 걷지 못하면, 걷고자 하는 의지를 모두 상실할 수 있다. 일상적인 보행이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보다 어려워질 수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앞을 보지 못하다가 백내장 수술이나 각막 이식을 통해 시각을 되찾게 되면, 일정 기간동안, 되찾은 시력은 단지 어둠속에서는 잘 해오던 일에 혼란을 가져올 뿐이다. 이 시력은 단지 조심스럽게 학습된, 그다지 가치있어보이지 않는, 새로운 기술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인간의 사회생활 전체를 언어의 발현에 의한 것으로 봐도 충분할 것이며, 언어가 적절한 시기에 학습되지 않는다면 개인의 모든 사회적인 측면이 유실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p>
<p>정리하자면, 언어에 대한 인간의 관심은 코드화와 복호화에 대한 타고난 관심인 것으로 보이며, 다른 어떤 관심보다도 더 인간만이 가진 고유의 것으로 보인다. <strong>언어(speech)는 인간의 가장 큰 관심사이며, 인간이 얻어낸 가장 독특한 성과물이다.</strong></p>
<p>나는 문헌학자의 아들로 자라서 언어의 성격과 기법에 관련된 문제들이 어려서부터 내 관심을 끌었다. 현대 커뮤니케이션 이론과 같이 완전히 혁명적인 언어 이론이 과거의 언어학적 사상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는 없다. 나의 아버지는 매우 이단적인 문헌학자여서 그의 영향력이 문헌학을 현대 커뮤니케이션 이론의 영향과 유사한 방향으로 이끌었는데, 나는 이 장에서 언어의 역사와 우리의 언어 이론의 역사에 관한 아마츄어적인 생각을 좀더 이야기하고 싶다.</p>
<p>인류는 매우 오래전부터 언어는 신비롭다는 관념을 가져왔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riddle)는 지혜에 대한 원시적인 개념이다. riddle 이란 단어 자체는 “to rede”(충고하다) 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to rede 는 알아내다(to puzzle out)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많은 원시사회의 사람들 에게 글과 마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의 어느 지역에선 글에 대한 존중 때문에,사람들이 오래된 신문조각이나 쓸모없어진 책들을 버리는 것을 꺼려하기도 한다.</p>
<p>이와 유사한 현상으로 “이름 마법"(name magic)이란 것이 있는데, 어떤 문화권의 사람들은 마법사가 그들의 진짜 이름을 알아내지 못하게 하기 위해 평생을 자신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살기도 한다. 이런 이름중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것은 유대인들의 신인 여호아(Jehovah)인데, 이 단어에서 모음(vowel)은 신의 다른 이름인 “Adonai”에서 빌어온 것으로, 이렇게 함으로써 신의 이름이 세속적인 입을 통해 발음되는 신성모독을 피할 수 있었다. (역자주: 성경의 신의 이름은 라틴어로는 자음만으로 이루어진 YHWH로 표기되었고, 유대인들은 성경을 읽을때 이 신의 이름은 발음하지 않았다. 나중에 신이란 뜻의 다른 단어인 Adonai에서 모음을 빌어와 Yahweh 혹은 Jehovah로 표기했다.)</p>
<p>언어에 관해서, 이름에 대한 마법보다 훨씬 더 과학적이고 심도있는 흥미로운 사실들이 있다. 구전 및 기록된 문서의 진위를 구분하려는 본문비평(textual criticism)에 대한 관심은 모든 문명의 고대인들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성스러운 문서는 순수하게 보존되어야만 한다. 서로 다른 판본들이 존재할 경우 단호한 해석자(commentator)에 의해 정리가 되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기독교 및 유대교의 성경, 페르시아인과 힌두교도의 경전, 불교도의 경전, 그리고 공자의 책들은 모두 오래전부터 해석자가 존재했다. 진정한 종교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배운 것은 문학적 원칙으로 수행되어 왔고, 본문비평은 지적인 학문의 가장 오래된 것들 중 하나이다.</p>
<p>지난 세기의 문헌학적 역사의 대부분은 일련의 도그마들로 축소되었고, 이 도그마들은 종종 언어의 본성에 대해 놀랄만큼 무지함을 보였다. 그 시대의 다윈 진화론적인 모델은 지나치게 진지하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주제는 의사소통의 본성에 관한 우리의 관점과 매우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이 주제에 대해 좀더 이야기하는게 좋겠다.</p>
<p>히브리어가 낙원에 있던 인류의 언어였고, 바벨탑을 만드는 과정에서 언어가 나뉘어졌다는 고대의 추측은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이와 유사한 순진한 문헌학적 사고가 꽤 오랜기간 동안 유지되어 왔다. 언어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고, 각자가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 결국 완전히 다른 언어로 발전했다는 생각은 르네상스 시대에 예리한 문헌학자들을 사로잡았다. 뒤깡즈(역자주: 1610-1688, 프랑스의 문헌학자. 중세 및 비잔티움 역사 연구의 대가)의 책 <중세와 후기 라틴의 용어사전>에서 분명히 알수 있는 것은 로마 언어의 뿌리는 라틴어 뿐만이 아니라 통속 라틴어에도 있다는 것이다. 히브리어와 아랍어, 시리아어 사이의 유사성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는 박식한 랍비들이 많았을 것이다. 많은 비방을 받았던 워런 헤이스팅스(역자주: 영국 정치가. 인도의 초대 총독)의 조언에 따라 동인도회사가 포트 윌리암에 동양학 학교를 세웠을때, 한쪽에 있는 그리스어와 라틴어, 그리고 다른 한쪽의 산스크리트어가 서로 매우 닮았다는걸 무시하는건 불가능했다. 지난 세기 초에(역자주: 19세기 초) 그림 형제와 덴마크의 라스크(역자주: 덴마크의 비교언어학자)의 연구는 게르만어가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는 것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이들 언어간의 언어학적 관계를 명확히해서 이들이 공통된 근원을 가진다는 것을 보였다.</p>
<p>이처럼 언어에서의 진화론은 생물학의 세련된 다윈 진화론에 시기적으로 앞선다. 언어학적 진화론은 곧 바로, 생물학적 진화론이 적용될 수 없는 곳에서 생물학적 진화론을 능가하기 시작했다. 언어들은 독립적이고 유사-생물학적인 개체이며, 발달과정에서 순전히 내적인 힘과 요구에 의해 변경된다고 가정되었다. 사실은, 언어는 인간 교류의 부수현상이며, 그러한 교류의 패턴에 따라 바뀌게 되는 모든 사회적인 힘들에 영향을 받는다.</p>
<p><strong>Mischsprachen</strong>(역자주: 독일어로 혼성어를 뜻함. mix + language)이 존재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예를들어, Lingua Franca(역자주: 국제어. 서로의 언어를 모를때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도구적인 언어들을 뜻함. 초기의 lingua franca는 이탈리아어를 위주로 터키어, 프랑스어, 그리스어, 아랍어 등이 혼합된 형태로 르네상스 시대에 무역이나 외교에 사용되었으며, franca라는 단어는 중세시대에 서유럽을 통칭하는 단어로 사용됨. 흔히 피진이나 크리올이 lingua franca로 사용되기도 하나 다른 형태도 존재함. 피진은 외부로부터 온 무역상들과 현지인이 만나면서 의사소통때문에 자연스레 형성된 혼성어를 부르는 말이며, 피진이 뿌리내려 모국어로서 사용되는 말을 크리올이라 한다.), 스와힐리어, 이디시어, Chinook Jargon(역자주: 치누크어와 영어,프랑스어의 혼성어. 치누크족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한 부족임), 그리고 좀더 확장한다면 영어까지도 여기에 포함할 수 있을텐데, 각각의 언어의 유래를 추적해서 하나의 합법적인 선조를 찾아내고, 근원이 되는 다른 참여 언어들은 단순히 신생아의 대부 정도로 취급하려는 시도들이 있어왔다. 학자들은 용인된 법칙을 따르는 합법적인 음성적 유형을 임시어, 통속 어원, 속어 등과 같은 유감스런 사건들과 구별해왔다. 문법적인 측면에서는, 근원과 상관없이 모든 언어를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위한 틀에 끼워맞추려는 시도에서 시작해서 자신만의 고유한 구문 어형변화표를 모든 언어들에 엄격하게 적용하려는 시도로 이어졌다.</p>
<p>오토 예스베르센의 최근 연구 이전까지는 대부분의 언어학자 그룹이 에스키모인들에게 에스키모어 말하기를 가르치고, 중국인에게 한자쓰기를 가르치는 것과 같은 진부한 시도를 벗어나서 이들의 과학이 실제로 말해지고 씌여지는 언어를 다룰 수 있을만한 충분한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잘못된 문법적 순수주의의 결과는 학교 바깥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중 첫번째는 아마도 라틴어가, 마치 이전 세대의 고전적인 신들처럼, 자신의 자식들에 의해 살해당한 예일 것이다.</p>
<p>중세시대 동안 다양한 품질의 라틴어가 서유럽 전반에서 성직자들 및 모든 학식있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언어로 남아있었는데, 그중 가장 좋은 품질의 것은 현학자를 빼고는 모든 사람에게 충분히 쓸만한 것이었고, 아랍어가 오늘날까지도 이슬람 세계에서 남아있는 것과 같은 정도였다. 라틴어의 이와같은 계속된 인기가 가능했던 것은 이 언어를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기꺼이 다른 언어들의 장점을 차용하려 했고, 그 시대의 실질적인 철학적인 문제들을 토론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라틴어의 형식 안에서 구성하려 했기 때문이다. 성 토마스의 라틴어는 키케로의 라틴어와 같지 않은데, 그렇지 않았다면 키케로는 토마스의 아이디어(Thomistic ideas)를 키케로식의 라틴어(Ciceronian Latin)로 논의하지 못했을 것이다.</p>
<p>유럽에서 통속 라틴어들이 등장한 것이 분명 라틴어의 기능을 정지시켰을 것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인도에선 네오-산스크리트어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산스크리트어는 오늘날까지도 놀라울만한 활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전에 언급했듯이 대부분의 이슬람교도는 아랍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고, 오늘날 아랍어의 구어는 여러 개의 매우 다른 방언들로 나뉘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세계는 고전 아랍어의 전통으로 통합되어 있다. 하나의 언어가 세속적인 의사소통에 더이상 사용되지 않더라도 학문을 위한 언어로 수세대 동안 혹은 수세기동안 유지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현대의 히브리어는 그리스도 시대의 2천년동안 사용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고, 지금은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현대적인 언어로 재등장했다. 지금 내 논의에서, 나는 단지 학자들 사이에서도 라틴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p>
<p>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오면서, 라틴어 학자의 예술적인 기준은 높아졌고, 고전시대 이후의 신조어들을 없애려는 경향이 점점 커졌다.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이탈리아 학자들에게 이 개량된 라틴어는 일종의 예술작품이 될 수 있었고, 일정부분 실제로 그랬다. 그러나 양식의 완전함 보다는 내용에 항상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과학자들을 교육시키는데 있어서 라틴어는 부수적인 것이었고, 더구나 이와같이 섬세하고 세련된 도구를 휘두룰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라틴어를 가르치는 사람들과 라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분리된 계층이 되었고, 마침내 교사들은 제자들에게 가장 세련되고 쓸모없는 키케로식의 연설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게 되었다. 이와같은 상황에서 그들은 결국 전문가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외한 모든 기능을 스스로 제거하게 되었다. 라틴어의 특성이 점점 더 일반적인 수요를 잃어감에 따라 그들은 스스로의 기능을 폐지했다. 이 자만의 죄에 대한 대가로 우리는 오늘날 에스페란토어와 같은 인공적인 언어 보다 훨씬 더 뛰어나면서 현대의 요구사항에 잘 어울리는, 국제언어로서 적합한 언어를 잃게 되었다.</p>
<p>안타깝게도 고전학자들의 태도는 지적인 비전문가의 이해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나는 최근에 한 고전학자의 졸업식 연설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현대 언어의 원심력이 점점 커져서 자연과학자와 사회과학자, 그리고 문학자를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드는 것을 한탄했다. 그는 이 연설을 그가 다시 태어난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이드이자 멘토가 되어 현대 대학들을 돌아다니며 가상의 여행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그의 연설은 각각의 현대의 지적 분야에서 사용되는 기술적인 전문용어(jargon)를 조롱하듯 제시하면서 시작됐다. 각각의 지적 분야는 끔찍한 사례로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소개됐다. 나는 여기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든 글들은 그의 제자들의 공책에서 나온 것으로, 이 공책들은 역사상 가장 읽기 힘든 기술적 전문용어들로 씌여졌으며 동시대 그리스인들중 학원의 수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 전문용어들이 역사에 의해 신성화되었고, 이때문에 이 용어들 자체가 고전 교육의 대상이 되었다는 주장은 적절치 않다. 왜냐면 이 신성화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동시대에서가 아니라 그 이후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의 그리스 언어는 한 명석한 학자의 기술적 전문용어와 타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오늘날의 학자 및 목사들의 영어는 현대 언어에서의 유사한 요구와 타협하려 하지 않고 있다.</p>
<p>앞서와 같은 경고를 참고해서, 귀와 두뇌에 의한 언어적 번역 및 언어의 해석과 관련된 작업들을 비인간의(non-human) 통신 네트웍의 연결 및 작동에 비유하는 현대적인 관점으로 되돌아가 보자. 이것은 현대적이면서 한때는 이단적이었던 예스베르센 및 그의 학파의 관점과 매우 잘 들어맞는다는 것을 알수 있을 것이다. 문법은 더 이상 당초에 규범적이지 않다. 문법은 사실에 기반을 둔 것이 되었다. (It has become factual.) 우리가 어떤 코드를 사용해야 하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코드를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언어에 관한 세부적인 이론에서 규범적인 질문들이 실로 중요해지고, 또 매우 정교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의사소통 문제에서 가장 화려한 꽃(역자주: 가장 어려운 문제)을 나타낼 뿐이지 가장 근본적인 단계들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p>
<p>우리는 이와같이 인간의 의사소통에 있어서 가장 단순한 요소를 위한 기초를 수립했다: 즉, 두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있을때, 언어의 직접적인 사용을 통해 이루어지는 의사소통 말이다. 전화나 전보, 그리고 다른 비슷한 통신수단의 발명을 통해 이 능력(역자주: 얼굴을 마주보고 하는 의사소통)은 본질적으로 개개인이 실제로 참석해야 하는 것으로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우리는 이 의사소통 도구를 지구 끝까지라도 가져갈 수 있는 다양한 수단들을 가지고 있다.</p>
<p>원시 부족들 사이에서 효과적인 공동생활을 위한 공동체의 크기는 언어를 전달하는 어려움에 의해 제한된다. 수천년동안, 이 어려움은 국가에 있어서 최적의 크기를 수만명 혹은 일반적으로 그 이하로 제한했다. 이 제한된 크기를 넘어선 대 제국들은 개선된 통신수단 덕분에 단결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을 것이다. 페르시아 왕국의 핵심은 Royal Road(역자주: 페르시아의 다리우스왕이 빠른 정보 전달을 위해 제국을 가로질러 만든 도로)와 그 길을 이용해 왕의 메시지를 전달하던 전령들의 중계였다. 대 로마 제국이 가능했던 것은 도로 건설기술의 발전 덕분이었다. 이 도로들은 군대 뿐만 아니라 글로 씌여진 황제의 권위도 운반했다. 비행기와 라디오 덕분에 통치자들의 메시지는 지구 끝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되었고, 세계 국가(World State)를 불가능하게 했던 많은 요소들이 사라졌다. 심지어는 현대의 통신수단- 우리는 새로운 방송 시스템과 새로운 비행망이 필요하다는 국제적인 주장에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인데 - 덕분에 세계 국가는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가능해졌다.</p>
<p>그러나 통신수단의 효율성이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전히, 항상 그래왔듯이, 엔트로피가 증가하려는 압도적인 경향에 영향을 받고 있어서, 외부의 조정자가 통제하지 않는다면 정보는 전달과정에서 유실이 발생하게 된다. 나는 이미 사이버네틱스적인 생각을 가진 언어학자의 언어에 관한 흥미로운 관점을 언급한 바 있는데, 말하기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함께 하는, 그들을 교란시키려는 힘에 대항해 벌이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이와같은 정의를 기초로, 만델브로트 박사(역자주: 폴란드 태생의 미국 수학자. 프랙탈 연구의 선구자)는 최적의 언어(역자주: 교란을 최소화하는 측면에서 최적화된 언어)에서 단어들의 길이의 분포에 관해 계산하고, 이 결과를 실존하는 언어들의 결과와 비교한 적이 있다. 만델브로트의 결과는 특정 기준 하에서 최적의 언어는 반드시 단어의 길이가 특정한 분포를 보인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분포는 에스페란토나 볼라퓌크어와 같은 인공어에서 발견되는 분포와 매우 다르다. 반면에 수세기동안 꾸준히 사용되어온 대부분의 실제 언어들에서 발견되는 분포와는 매우 유사하다. 사실, 만델브로트의 결과는 단어 길이에 관한 절대적으로 고정된 분포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의 공식에는 여전히 주어져야 하는 값들이 존재하는데, 수학자들이 <strong>파라미터</strong>라 부르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이 파라미터들을 적절히 선택하면, 만델브로트의 이론적 결과는 많은 실제 언어들의 단어 분포와 매우 잘 들어맞게 되는데, 이 사실은 언어들에 특정한 자연선택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내며, 살아남은 언어들은 단어의 분포에 있어서 최적의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형태를 취함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p>
<p>언어의 소멸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언어는 단순히 언어를 혼란시키려는 자연의 경향과 싸우기도 하고, 그 의미를 고의적으로 전복시키려는 인간의 의도와 싸우기도 한다. 정상적인 의사소통 화법의 가장 큰 적은 자연의 엔트로피적 경향이고, 자신만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 적극적인 적과는 대면하지 않는다. 반면에 법정의 화법(forensic discourse)은, 예를들어 법정에서 입법 논쟁과 같은, 훨씬 가공할만한 반대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때의 의도는 자격을 얻기 위한 것이거나 심지어 그 말의 의미를 파괴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언어를 게임으로 보는 이론은 이 두가지 종류의 언어를 구분해야 하는데, 하나는 정보를 전달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집센 반대세력에 자신의 관점을 강요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다. 우리의 목적을 위해 이 두가지 종류의 언어를 구분하는데 필요한 기술적인 관찰 결과나 이론적인 명제를 제시한 언어학자가 과거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들 두가지 언어가 충분히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언어와 법률을 다룰 다음 장에서 법정의 언어에 관해 좀더 이야기하도록 하겠다.</p>
<p>언어에서 의미의 손실을 제어하기 위한 규율로서 사이버네틱스를 적용하려는 의도는 이미 몇가지 문제점을 노출했다. 노골적이고 직설적으로 전달되는 정보와 그 정보에 기반해 인간이 효과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성격의 정보, 조금 바꿔서 말하면, 기계가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정보, 이 두가지를 구분하기 위한 방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내 의견으로는, 이 구분에 가장 중심이되면서 어려운 점은 행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전송되는 정보의 양이 아니라 행동을 유발할 수 있을 만큼 통신수단 및 저장장치 속으로 침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라는 것이다.</p>
<p>새로운 감각들이나 이전의 정보 시스템에서는 제외됐던 기억들로부터 새로운 정보가 유입되지 않는다면, 메시지의 전송과정이나 메시지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메시지에 포함된 정보의 양은 줄어든다는 것을 언급한바 있다. 이 진술은 열역학 제2법칙의 또다른 버전이다. 이 장의 앞부분에서 언급했던 변전소를 제어하기 위한 정보 시스템을 생각해 보자. 수문을 열고 닫거나, 발전기들을 동기화하거나 혹은 비슷한 종류의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우리가 라인을 통해 전송하는 정보가 아니라 마지막 기계에 도달할때까지 남아있는 정보다. 어떤 의미에서, 이 터미널 기기는 전송 회선에 겹쳐져 있는 일종의 필터로 간주할 수도 있다. 사이버네틱스의 관점에서 보면 의미론적으로 중요한 정보는 단순히 라인만을 통과하는 정보가 아니라 필터가 붙어있는 라인을 통과하는 정보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음악의 메시지를 들을때, 대부분의 소리는 내 감각기관에 닿고 내 두뇌에 도달한다. 그러나 만일 내가 음악적 구조의 심미적인 이해에 필요한 훈련이나 지각이 부족하다면, 이 정보는 장애물을 만나게 될 것이다. 반면에, 만일 내가 훈련된 음악가라면 이 정보는 해석 기구를 만나게 될 것이고, 이 기구는 정보의 패턴을 의미있는 형태로 전시하고 이를 심미적인 감상과 더 깊은 이해로 이끌 것이다. 사람에서 뿐만 아니라 기계에서도 의미론적으로 중요한 정보는, 사람 또는 자연이 그 정보를 전복시키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시스템의 활성화 매커니즘 안으로 도달하는 정보다. 사이버네틱스적인 관점에서보면, 의미론(semantics)은 의미의 크기를 정의하고, 통신 시스템에서 의미의 감소를 제어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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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uman Use of Human Beings<br>
4장. 언어의 역사와 작동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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